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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북한알기] 북한. 천리마시대. 농촌 문화 주택

편하게글쓰기/쉬엄쉬엄 북한알기

by asf1233 2018. 11. 12.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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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천리마시대. 농촌 문화 주택.


 

"몇 년 전까지도 이 마을에는 초가집 일곱 채가 있었을 뿐이었다.  (중략) 건설대원들은 집을 지음에 있어서 농민들의 의향을 들어 세대당 2간의 방과 8평방메터의 부엌, 7 평방메터 가량되는 헛간이 달리게 하였다. 주택 뒤로는 울타리도 칠 수 있으며 옆에는 돼지우리, 토끼장과 닭우리를 지을 수 있는 공지와 고추와 파 같은 채소를 심으며 과실 나무도 심고 꽃밭도 만들 수 있게 집터를 잡았다. (중략) 좋은 문화 주택을 쓰고 살게 된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부락 중심에 전에 없던 탁아소가 설치되여 근심 걱정 없이 어린애들을 잘 키울 수 있게 되였으며 조합 일을 더욱 많이 할 수 있게 되였다. "


(허창련, 생산 활동과 생활에 편리하게! 농촌 문화 주택이 건설되고 있는 황주군 상정리에서, 로동신문 1961년 12월 10일, 3)



우리가 70년대 새마을운동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면, 북한 역시 50년대 중후반을 넘어서며 대대적으로 문화적인 농촌과 도시를 건설하고자 하던 시절이 있었다. 북한의 경제 성장률이 한때 높았던 것이 사실이기에 이 시기 북한 농촌, 도시의 변화 양상은 비교적 컸을 것이다. 


구체적인 통계를 들여다 보진 않아 뭐라고 말하진 못하지만, 여러 보도양상으로 볼때 이시기를 지나면서 북한의 농촌 문화 주택들이 적지 않게 건설된 것 같다. 인용한 보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때론 문화 주택들과 같이 농촌 마을에 우물도 제대로 고치고, 헛간도 만들고, 탁아소도 들어서고. 과일나무도 심고(이즈음 농촌에서 과일나무 심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주민들에게 문화성 교양도 하고 그랬다고 한다. 


마을과 도시의 건설 모습은 매체를 통해 전파되었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더 문화적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를 다양한 예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다. 각종 신문과 소설 속에서 그들이 꿈꾸었던 사회주의적 삶의 예시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난과 낙후가 일상이었던 시대 배경 속에서, 이런 양상이 주민들이 자기 세대의 고생을 감수하면서 일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시기 천리마의 기억은 오늘날에도 북한 매체들에 의해 계속 상기되며, 그들 체제가 유지되게 하는 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싶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본 글은 학문적 전문성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편하게 쓴 제 생각이 담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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